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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래 2020

생소 (Sngso) 2020. 12. 17. 22:03

연설문 찢기

2020. 2. 6.

내가 어제 연두교서 봤을 때 펠로시 하원의장이 연설문 찢는 것은 많이 감정적인 모습으로 비춰졌는데.... 연두교서 시작할 때는 그래도 괜찮았는데 뒤로 갈수록 트럼프가 엉뚱한 사람에게 깜짝 서훈을 하고 파병 군인의 깜짝 가족상봉을 보여주는 등 아무리 생각해도 지나친 것 같은 보여주기를

하면서 표정이 갈수록 안 좋아졌고... 트럼프가 100세 전쟁 영웅, 테러 희생자 유가족들과 같은 사람들을 미국적 내셔널리즘의 상징으로서 자기의 방패막이이자 자랑처럼 전시하고 써먹는 모습에서 충분히 분노를 느꼈을 것 같다. 정치적 의사소통은 때로 감정을 필요로 하기도 하고.....

다만 나는 연설문 찢기에서 어떤 결기나 가치를 보기보단 어떤 막막함과 무력감을 더 많이 느꼈던 것 같다. 미국 민주당이 처한 정치적 곤란함을 다 담은 것 같은 그런 행동이라고나 할지....

 

짜파구리

2020. 2. 10.

개인적으로 짜파구리를 처음 먹었던 게, 재수생활 하면서 노회찬 의원이 김지선 후보에게 끓여줬다고 하는 본인의 페이스북 글을 읽고 호기심에 한번 해 먹어본 것이었다. 내 입맛에는 그닥 맞지 않아서 그 이후로 더 찾지는 않았지만.... 그래서 ‘기생충’에 짜파구리가 나왔을 때 묘하게 착잡한 심정이었다. (안팎의 원인으로) 정치과정에서 노동자가 소외되어가는 나라에서 그 음식이 연교의 입에서 불려나오는 장면이....

그걸 주한미대사가 오스카 시상식을 보며 먹는 모습을 보니 그 당시 들었던 그런 착잡한 감정이 다시 떠오른다. 본디 짜파구리가 그런 음식이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하는 기묘한 생각이 들 정도로....

짜파구리는 그 자체로 한국의 ‘대중음식’의 전형이라 불릴 만하다. 짜파구리의 기원은 불확실하지만, 여러 종류의 라면을 합치고 섞어 먹는 것은 짜파구리 이전에도 존재했을 정도로 오래된 대중 식문화였다. 그것은 아마 기성품의 틈바구니 속에서 조리와 비슷한 과정을 만들고, 구전되는 레시피를 만들었을 것이다. “기생충”에서 이 계급의 식문화는 거꾸로 전유된다. 연교가 전화로 (채끝살이 올라갈) 짜파구리를 부탁하자 충숙은 당황한다. “짜파구리가 뭐야?”

정확히 말하자면 이런 전유가 “기생충”에서 일어났다기보단, 한국 사회에서 빈번하게 일어나는 것이 영화에 반영되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신천지

2020. 3. 2.

사이비 종교에 빠지기 쉬운 사회경제적 상태라는 것이 존재한다고는 생각하지만 그것이 반드시 들어맞는 것은 아니고, 그 구조가 소위 피해자로 하여금 가해의 공모자가 되도록 만든다는 것도 지적되어야 한다. 또 신천지에게서는 신흥종교와 자기계발담론의 접합이 두드러지는 것 같다.

신앙의 자유에 대한 옹호가 반드시 이런 신흥종교의 탈법과 기만, 강제와 꼭 같은 층위에서 맞부딪쳐야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마찬가지도 코로나19에 대한 방역 문제와 신천지라는 사이비 종교의 문제를 잘 구분하는 것도 중요할 것 같다.

분명 어떤 문제들은 중층적이고, 서로 떼놓고 생각할 수 없을 것이지만 지금은 불필요하게 많은 것이 한데 모여 있다는 인상이 크다. 신천지혐오다! 식으로 말하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지만, 오월동주라도 일단 배에 붙은 불은 끄고 싸우자는 정도는 있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저들을 80석 아래로 분쇄해야 한다"

2020. 4. 15.

이 정도인데도 미래통합당이 이만큼 먹는가, 가 아니고 그게 강한 양당 구도에서 보수정당이 가져가는 기반이라고 생각한다. 어디선가 "저들을 80석 아래로 분쇄해야 한다"는 말을 들었던 것 같은데 앞으로도 그렇게 될 가능성은 많지 않다고 생각한다.

예전에도 적은 적이 있지만 나는 한국의 정치가 몇 개의 안전핀으로 뒷받침되고 있다고 생각한다. 표면의 소용돌이라는 것도 그래서 가능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고....

 

조급함

2020. 5. 8.

요즘 정의연 문제에서 이용수 “위안부” 피해자의 ‘저의’를 추정하는 그런 글들이 많이 나오는 것 같은데, 멀리 나간 주장들이 너무 많아 읽는 사람조차 속이 쓰리다.

나는 정의연 문제의 배경에 (정당한) 조급함이 깔려 있다고 생각한다. 위안부 피해자들은 많은 경우 고령이다. 어떤 형태가 되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각자 다를지라도, 자신이 사망하기 전에 이 문제가 매듭지어지길 소망하는 분들도 적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당신을 절반만 믿겠다

2020. 5. 14.

"나는 당신을 믿는다"와 "나는 당신을 믿지 않는다"라는 두 상태가 있다면, 세상엔 "나는 당신을 절반만 믿겠다"라는 것이 가능한 관계가 있고 그것이 본래적으로 불가능한 관계가 있다고 생각한다.

딱 잘라 말할 수 없다고 하더라도, 최소한 자신이 헌신하는 관계가 둘 중 어느 편에 속하는지, 서로가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이는지는 잘 알아둘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두 관계 모두 삶에서 필요한 관계이지만, 전자와 후자를 서로 헷갈린다면 당사자 모두에게 그것은 매우 피곤한 관계가 될 것이다.

 

냉소가 무얼 파괴하고 무엇을 만들어냈는지

2020. 5. 25.

정의연 문제는 단순하지가 않은데 특히나 언론들의 욕망이 상황을 가장 단순하고 정파주의적으로 만들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지난 십여 년 간 한국 정치에서 냉소가 무얼 파괴하고 무엇을 만들어냈는지를 사람들이 알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상황이 그렇게 단순하게 흘러가지 않을 것이라는 그런 작은 믿음을 간직하고 말과 글을 줄이고 있다.

 

관계설정

2020. 5. 25.

개인적으로 정의연 문제를 추동한 것은 제도권 정치와 사회운동 간의 관계설정이 원인이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있는데, 좀 더 큰 배경에는 역시 "위안부" 문제가 결국 여성을 동원하는 근대 국민국가의 문제임에도 시민사회가 그것을 다루었어야 했던 데에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조금 듭니다.

 

두려움이나 비천함 없이

2020. 6. 7.

개인적으로 스스로 이성애자라고 생각하는 편이고 성애가 되었든 어떤 낭만적인 감정이 되었든 거의 대부분 이성에게서 느꼈던 것 같지만, 과거의 나를 돌이켜 생각해보면 분명 서로 단순한 친구 이상의 감정을 주고받았던 것 같은 동성이 분명히 존재했고 앞으로 그런 관계가 존재하지 않을 것이라 단정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만일 그런 사람을 만났다고 했을 때 내가 예상하는 어떤 ‘특별한’, 사회적인 두려움이나 비천함 없이 서로의 감정에 헌신을 할 수 있을까 하면 결코 그렇다는 대답을 할 수가 없다고 생각하고 그렇게 생각하는 데에서 오는 당혹감과 부끄러움 때문에 나는 내가 알거나 알지 못하는 모든 퀴어한 사람들이 (혹은 나 자신이) 사회적으로 그들의 존재 자체를 오롯이 또 마땅히 존중받기를 바란다...나 어쩌나 이런 생각을 일요일 아침에 적고 있으려니 이상하고 뭐 그런....

 

"하지만 결국 자본주의는 제조업이다"

2020. 7. 8.

예전에 한 동생이 요즘 반도체도 그닥이고 조선이나 자동차도 빌빌대니 결국 답은 서비스업에 있는게 아니냐고 하길래, “하지만 결국 자본주의는 제조업이다”라는 지론(?)을 설파했었다. 그게 2년 전쯤이었던 것 같은데....

혼자만의 생각은 아니고, 여러 선생님들 글을 접하다보니 만들어진 아이디어다. “일본이 금융 등으로 전환했다”고 하시는 분은 분명 일본의 자동차와 그 연관산업, 자본재 산업의 현황을 과소평가하고 계신 거라고 생각한다. (물론 “금융화”는 1980년대 이후로 중요한 세계적 화두지만...) 한국 정도 크기의 국가경제는 제조업 분야 없이 돌아가는 데에 한계가 있다는 생각을 한다. 주요 생산설비가 해외로 나가고 거래처가 해외에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만드는 연구개발과 경영관리, 거기서 나오는 서비스 수요란 막대한 것이 아닌가 싶다.

일국경제 수준으로 봐도 그렇지만, 세계경제 수준에서는 이것이 좀 더 뚜렷하게 보인다고 생각한다. 전세계 인민들의 구매력 증대(그것이 인민의 복지와 동치되지 않지만)를 추동하는 건 제조업 섹터의 세계적 이동이다. 이 규모는 지난 세기동안 대체로 커지는 방향으로 나아갔다고 생각한다.

사실 이것 때문에 기후변화 문제에 대해서 좀 생각이 복잡해지는 면이 있다. 새로운 제조업의 성격을 변화시키고 새로운 시장을 만들어내는 것으로, 또 시장 바깥의 영역, 가령 비영리 사업이나 정치적인 영역에서의 노력을 통해 대처해야겠지만....

 

거대 양당

2020. 7. 24.

저는 "한국 제도권 정치는 수구세력과 보수개혁세력의 거대 양당이 이분하고 있다"는 말에 어느 정도 공감하지만, 그것이 일종의 한국 정치의 '비정상적 현상'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제가 참 이런 점에서 보수적인지는 모르겠지만....

예컨대 많이 이야기되고 있는 것이 유럽 정당정치와의 비교인데, 유럽 기성 좌파 정당들의 보수화에 대한 과소평가를 제하더라도, 외려 전지구적인 접근이라면 냉전 시기 동아시아 국제질서의 유산이라는 관점에서 국내정치를 생각해볼 필요가 있지 않나 하는 그런 생각이 있습니다.

설령 한국 사회에 실재하는 정치적 균열들이 (소위 "우경화된") 제도권 정치의 갈등들과 전부 들어맞는 것은 아니라고 하더라도, 분명 그 자체로 기능하고 있는 부분들과 그 안에서 여러 꿍꿍이로 움직이는 행위자들에 대한 이해가 이루어져야 새로운 정치를 모색하는 것도 가능하지 않나 합니다.

 

속좁은 사람

2020. 7. 28.

이건 '정치'의 경중 문제일지도 모르겠지만 제게는 먼저 '친구'의 경중 문제가 될 것 같아요.

저 같은 경우에는 '정치 성향이 다르다고 해도 같이 밥먹고 술먹고 같이 놀고 잘 지낼수도 있지'라고 생각하고 실제로 그렇게 행동할 때도 있지만, 결국 그 사람이 나랑 "친구"인지, 친구라면 얼마나 가까운 친구일지 따져묻기 시작하면 거기서부터는 정치 성향이 작동하는 것 같더라고요.

어떤 분들은 "밥먹고 술먹고 같이 놀고 잘 지내면 그게 친구 아니냐"고 하실 것이고 그렇다면 저는 '정치 성향이 다른 사람이라도 친구로 지내는 데 거리낌이 없는 사람'이겠지요. 그런데 제가 저 스스로 그런 사람을 친구라고 기꺼이 부르곤 하는가 생각하면 그건 또 아닌 것 같아요.

왜냐면 그런 사람에 대해서 저는 겉으로는 잘 지내지만 마음 속에서는 "이 사람이 세계를 바라보는 방식이 나와는 잘 호환되지 않겠구나, 내가 그걸 염두에 두고 행동해야겠구나"라는 필터링을 꾸준히 해야 했고, 저는 그런 사람을 "친구"라고 부르는 걸 주저하는 편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제가 스스로 "정치 성향이 다른게 무슨 상관이야, 재밌게 잘 지내면 그만이지!"라고 생각한다고 믿고 있는데도 막상 제 친구들을 둘러보면 결국 제가 마음 속에서 친구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어떤 정치적 스펙트럼 안에 들어오는 사람들로 한정되더라고요.

사실 원 트윗을 쓰신 분은 아마 "정치적 견해가 다르더라도 널리 친구로 사귈 수 있는 태도"를 기꺼이 추구해야 하는 "포용력"인 것처럼 말함으로써 분명히 존재하는 가치관/세계관의 차이를 인지하고 행동하는 걸 마치 "속좁은 사람의 태도"로 틀짓는 걸 지적하고 싶으신 것이 아니었을까 합니다.

 

7명의 사무라이

2020. 8. 4.

얼마 전에 게임 "고스트 오브 쓰시마"와 구로사와 아키라 영화에 대한 폴리곤의 기사 (polygon.com/2020/7/23/2133)를 읽었었는데, 문득 "7인의 사무라이"에서 내가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했던 장면이 퍼뜩 떠올랐다. 7명의 사무라이 중에는 사무라이가 아닌 사람이 한 명 있는데, 바로 키쿠치요라는 인물이다. 그는 마을을 지켜달라는 농민들이 사실은 떠돌이 사무라이들을 죽이고 가진 걸 털어가는 놈들일 거라고 말하며, 한편 농민들을 그렇게 만든 건 사무라이들이라고 말한다. 나에겐 이 장면이 결말 부분과 맞닿아 굉장히 현재적이고 정치적인 장면으로 다가와서 기억에 많이 남았었는데, 게임이 어떤지는 잘 모르겠지만 "구로사와 모드"씩이나 있다면 이렇게 기억에 남을 만한 장면이 있을지 궁금하다....

 

비서실의 일괄 사의

2020. 8. 9.

청와대 비서실의 일괄 사의를 보면서 여러가지 생각이 든다. 일부에서 보듯 그 모두가 '집을 지키기 위한 몸부림'으로 똘똘 뭉친 것은 아니라는 생각을 한다. 물론 일부는 그랬을 것 같지만... 그런 욕망으로 5명 중 한둘만 나갔어도 결과적으로 모두가 나가야 했을 것 같다.

현명한 선택들 하신 것이라 생각한다. 정치권력이 자본수익을 대놓고 지켜줄 수는 없으니.... 그런 시절은 김대중 정부 이후로는 사실상 끝났다고 생각한다. 좀 눈에 덜 띄는 곳들, 그리고 자본수익은 아니지만 소득의 형태로 보상을 제공하는 공기업과 계열사 사장 자리들이 남아 있지만.....

나는 문재인 정부와 민주당이 향하는 방향에 동의하진 않지만 그것이 지난 총선으로 대표된 것이니 잘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그렇게 대표된 '민의'의 핵심에는 정치가 다른 것에 우선하는 상황을 만들어야 할 만큼 행정관료(특히 검찰)나 사법부 등에 대한 지대한 개혁 요구가 있다고 생각한다.

보수 야당 등 일각에서는 "민주당 독재"라는 표현을 하던데, 내 생각에는 '독재'를 어떤 의미로 쓰느냐에 따라선 그렇게 부를 수도 있겠다 싶다. 그런데 결국 지금은 그런 독재를 쥐여주지 않고서는 해결할 수 없는 교착 상태에 너무 오래 머물러 있었던 것이 아닌지 하고 돌아봐야 하는 게 아닐까? 지난 3년을 돌아보면 알 수 있지만 문재인 정부는 진짜 보수적이고 체제유지적인 정부다. 지금 이런 정부랑 해결을 봐 놓아야 일말의 질서를 남겨놓고 다음을 생각할 수 있지, 그렇지 않고서 이거 뭔가 비벼볼 만하겠다는 오판을 하면 금방 이재명이라는 끔찍한 파도를 마주할지도 모른다....

이재명이 얼마나 멀리 간 사람인지는 이번에 "4급 이상 경기도 공무원들 살 집만 남기고 다 팔아라"라고 한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그런 헌신을 기꺼이 바칠 수 있는 사람만 주변에 남기겠다는 식의 사람인데 이런 인간이 대통령이라도 되었다 하면 얼마나 아사리판이 될지 감이 안 온다.

 

무게감

2020. 9. 25.

간만에 역사공작단 팟캐스트가 업로드를 재개했는데, 오프닝에서 팟캐스트 개시를 늦춘 원인 중 하나인 광복절 집회를 강하게 성토하는 내용이 있었고 이 점의 정치적 편향성을 지적하는 댓글이 붙어서 논쟁이 있었던 듯하다. 초창기 에피소드들은 그래도 이 점이 뚜렷한 편이었는데 (빨갱빨갱한 금강경쌤...) 교장 기랑쌤을 필두로 이후 패널들이 제법 균형추를 맞추는 분들이 많아서 뒤로 갈수록 그런 색채가 많이 옅어지긴 했다. (방송의 기점이 된 '국정교과서 문제'도 박근혜 탄핵과 함께 일단은 과거의 일이 되었으니)

나는 개인적으로는 이번 광복절 집회 관련 언급들은 딱히 백년쌤의 -꼰-(가령 인터넷에 한국사 DB가 많이 공개된 것에 대해 '이래서 개나 소나 사료 잘못 보고...'라는 취지로 말씀한다던지)보다도 별로 거슬리지는 않았는데, 아마 그건 내가 이런 편향에 비교적 우호적이라서 그런 것일테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앞으로 이런 이슈들에 대해서는 조금은 신경써서 말씀하시는게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든다. 어느 정도 규모가 커지기도 했고, 문제의식을 설정하는 데에는 도움이 되겠지만 '더 많은 대중의 역사학 이해'를 위해서라면 방송의 신뢰성에 영향을 줄 수도 있는 말씀들에 대해서는 공부하는 분들다운 무게감을 발휘해주신다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조금 들었다. 금강경쌤이 참 본인이 가장 편향적인 것 같아 보이면서도 이런 문제를 살살 피하고 농담으로 넘기는 데 아주 선수셨는데....

 

정치를 스펙타클로 만드는 것

2020. 10. 10.

류호정 의원의 삼성 임원 출입 지적과 하청업체 기술유출 문제제기 보며 정말 일 잘한다고 생각하지만, 의원이 소리를 지르는 것이나 그런 국정감사 영상을 편집해서 올리는 것은 좀 아쉬운 것들이 많다.

의원이라지만 초선에 소수정당이고, 반대로 한국에서 첫째 가는 재벌을 상대로 하는 것이니 그럴 만도 하다고 생각하지만 영상은 특히 예전부터 '정의당 영상 진짜 잘못 만든다'라는 생각을 더욱 강화하게 만드는 것 같다. 잘 못 만드는게 아니고 잘못 만들고 있다. 특히 음악 쓰는 거....

(동원가능한 자원이 부족한 정치집단일수록) 효과적인 프레임을 구축하고 그 위에서 싸우는 것도 중요한 일이지만, 정치를 스펙타클로 만드는 것은 언제나 경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자당의 당헌을 존중하지 않는 정당

2020. 10. 31.

자당의 당헌을 존중하지 않는 정당이 있고 그렇게 해도 문제 없는 상황과 환경이라는게 있을 따름이고 그뿐일 따름이라는 생각이 든다. 계산은 더치페이로....

선거를 우습게 보는 건 말이 안 되는 소리지만 당헌 당규도 거기 그냥 그 조항이 있으면 예쁠 것 같아서 있는 것이 아니다. 잴 수 있는 건지 없는 건지, 잰다면 얼마나 무게가 나갈 것인지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뉴스에 추미애-윤석열만 오르내리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

2020. 10. 22.

아침에 개인정비를 하면서 갑자기 이상하게 정치 쪽으로 잡생각이 들어서 옮겨보자면....

요즘 "뉴스에 '추미애-윤석열'만 오르내리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는 접근법이 보이곤 하는데, 이 둘이 기득권을 어떻게 하고 비위사실이 어떻다는 뉴스에만 집중하면 그렇게 보일 수도 있지만, 애초 청와대가 왜 조국을 거기 앉히려고 했었고 추미애를 거기 앉혔는지는 제법 의미있는 문제였다. 사법개혁이 난망한 상황에서 정부 밑에 있는 (컨트롤하고 있는가는 또 다른 문제지만) 주요 사법기관으로서 검찰을 개혁해야 한다는 필요성은 더 커졌고, 이 문제가 정치권력이 정부기구를 어떻게 지배할 것인가 하는 국가 문제이기도 하기 때문에 중요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문재인 정부가 잘 하고 있는 사안도 있지만, 사실 그 이상의 지지를 받을 수 있는 이유는 문재인 정부의 지난 통치보다도 이런 국가통치의 문제를 잠정적으로나마 이번 정권 하에서 매조지를 지어놓아야 한다는 의식이 밑바탕이 되어 있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든다.

정의당 김종철 대표의 새 리더십을 기대하고 있긴 하지만, 그가 공무원연금이라는 새 의제를 꺼내면서 내놓는 메시지들을 보면서 느끼는 아쉬운 점들이 있다. 첫째로는 추미애-윤석열 문제를 (물론 그리 보일 때도 있지만) '정쟁'으로 일축하는 것이 설득력을 떠나 좋은 접근법인가 하는 의문.

그 고민의 부재가 더 크게 느껴지는, 더 큰 아쉬운 점은 바로 공무원연금 개혁 의제 속에서 그런 큰 틀의 고민이 잘 안 보인다는 점이다. 정의당 정권 하의 공무원이란 민주당 정권 하의 공무원과 무엇이 달라지는지? 새 정권의 공무원은 어떤 유인으로 움직이는지? 그런 것들이 잘 보이지 않는다. 공무원연금 문제도 중요한 의제인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지금 정의당이 내놓는 이야기는 닥쳐오는 문제에 수동적으로 대응하는 것 이상이 될 수 있는지 의문이 들 수밖에 없다. 큰 틀의 현실인식이 보이지 않는 이상, 지금 벌어지고 있는 그 "정쟁"을 작은 스피커로 밀어낼 가망은 없다고 생각한다.

반드시 큰 틀이 먼저 존재할 필요는 없다. 의제들 속에서 그 고민들이 보이는 걸로 충분하고, 제도의 변화가 가져올 수 있는 구조적 변화가 정당이 내세우는 가치와 어떻게 상응하는지까지 느낄 수 있다면 정말 잘 구성된 의제이지 않을까 싶다. 나는 김종철 대표가 그걸 하기 위해 거기 가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여하간.... 정의당이 집권하면 그 대한민국에서 자본가들은 어떻게 존재하게 되는지, 북한이나 미국, 중국이나 일본과는 어떤 관계가 되는 것인지, 이런 것들이 궁금한데 그런 이야기를 잘 들어본 적이 없다.

물론 어느 정도 감안해야 할 것은, 보수야당이나 민주당과 같이 집권경험이 있는 정당들의 경우에는 그 국정운영의 실태와, 수시로 쏟아져나오는 국가기구의 메시지와 실제 적용을 통해 유권자들이 경험적으로 큰 틀의 문제의식을 유추할 수 있다는 점일 것이다. 사실 나같은 정알못이 이렇게 알지도 못하면서 떠드는 거야 쉬운 일이고, 아마 내 생각보다 이게 실제로 중요한 것이 아닐 수도 있고, 중요하다고 해도 그게 이렇게 이루어지지 못할, 내가 모르는 사정이 분명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한다.

 

공공임대주택

2020. 12. 12.

단독주택이지만 시골 동네의 14평도 안 되는 집의 한 방에서 5인 가족으로 나는 침대, 동생은 바닥 그렇게 한 방 쓰며 자랐고, 고등학생부터 시작되어 지금까지 계속된 기숙생활은 항상 몇 평 안 되는 공간의 공동생활이었다. 그래서 어제오늘 이슈가 된 공공임대주택이 참 마음에 걸리는 것 같다.

주거공간, 특히 어릴 때의 주거공간이 그 사람의 삶에 제법 영향을 준다고 생각하고 그런 점에서 공공임대주택들이 아쉬운 면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분명 부족하나마 이런 주택공급을 늘려나가는 것은 정부가 해야 할 몫이고 잘 하는 일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다만 어느 분 말씀처럼 "우리 때 다 그렇게 살았다"는 식으로 이야기할 수는 없는 것이고, 또한 정부의 워딩이 아쉬운 것 또한 사실이다. 이러한 공공임대주택 공급이 만족스럽지 못하더라도 좋은 첫단추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거처할 수 있는 다양한 주거를 효과적으로 공급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그것은 사회주의 국가들조차 굉장히 심혈을 기울였는데도 힘들어했던 일이고, 시장자본주의에서 정부가 이 정도나마 공을 들이는 건 분명 평가할 만한 일이라고 생각한.

 

잡았다 요놈

2020. 12. 12.

대통령님 임대주택 잘 둘러보시는 것도 좋지만, 군림보다 통치를 좀 해주십사....

문재인이라서 그런 건지, 소위 "촛불정부"라서 그런 건지, 87년 이후 대통령직이라는게 원래 그런 건지, 아니면 박근혜가 만들어놓은 청와대의 관성이 있는 건지, 한국의 정치 일반이 이렇게 변해버린 건지....

"문통이 여기서 4인 가족도 산댔다!" "잡았다 요놈 이 기레기를 매우 쳐라" 이 과정을 즐거이 지켜보는 것도 이제 한계다. 이게 남조선식 극장국가인가....

 

정치의 실종

2020. 12. 7.

정은경이라는 걸출한 전문가 관료에 대한 믿음 반대편에서 여전히 정치의 실종을 걱정할 수밖에 없는 것 같다. 오늘 문재인 대통령이 추미애-윤석열에 대해 메시지를 내놓은 것이 그래서 그나마 다행처럼 느껴진다. (아무 말 안 하고 있는 것보단 나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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