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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구적 비극의 가치 (The Value of Fictional Tragedy)

생소 (Sngso) 2021. 3. 9. 08:15

허구적 비극의 가치 The Value of Fictional Tragedy

 

  비디오 게임은 전통적으로 직설적인 영웅서사를 보여준다 . 그런 점에 비추어볼 때 〈레드 데드 리뎀션Red Dead Redemption〉의 비극적인 스토리는 비디오 게임의 통례에서는 실험적이고, 동시에 스토리텔링의 통례에서는 완전히 전통적이다. 하지만 어떤 게임들은 대승적 희생을 소재로 한 비극이나, 영웅서사 둘 모두를 거부한다. 9월 12일, 장난감 세계September 12는 얼핏 보기엔 직설적인 테러리스트 사살 게임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내 플레이어는 이 게임에서 시민이나 테러리스트를 죽이는 것이, 그들의 친지들을 슬픔에 빠뜨리고 결국 더 많은 테러리스트를 만들고 만다는 점을 깨닫게 된다. 이안 보고스트Ian Bogost는 이걸 "실패의 수사법rhetoric of failure"이라 불렀는데, 바로 플레이어로부터 영웅, 혹은 비극의 주인공이 될 기회를 빼앗는 일련의 디자인들을 일컫는다.

 

  나는 비극 그 자체로는 좋고 나쁨을 논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이 책의 1장에서 나는 "눈물흘리는 플레이어의 존재가 곧 비디오 게임이 진정한 스토리텔링 예술의 한 형식이라는 걸 내보이는 척도"라고 한 스티븐 스필버그의 말을 인용했다. 사실 슬픈 결말, 눈물나는 이야기에 대한 사람들의 태도는 양가적이다. 감상적인 최루성 영화는 호평받기보단 대개 비하당하기 마련이다. 어떤 예술작품의 질은, 사람들이 그것을 소비하면서 흘린 눈물의 양으로 측정될 수는 없다. 더군다나 예술의 한 형식이라는 찬사를 받겠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비극적인 비디오 게임을 추구해서도 안 될 것이다. 비극적인 게임에 대한 질문은 오히려, 그것이 비디오 게임으로 하여금 무엇을 할 수 있는지, 게임의 플레이어가 무엇을 받아들일 수 있는지에 관해 본질적인 질문을 던진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오스카 멘델Oscar Mandel은 비극을 물질적인 속성과 심리적인 속성, 두 가지 속성을 지닌 것으로 설명했다. 나는 게임이 그 허구적 세계에서 비극을 재현할 수 있는 두 가지 방법으로 자기파괴(물질적 속성)와 연루감complicity(심리적 속성)이 있음을 보였다. 이 중 연루감이 더 흥미로운 것인데, 이는 게임에 고유한 것이면서 플레이어가 느끼는 책임감을 주인공으로부터 게임 세계로 확장하기 때문이다. 연루감은 플레이어와 주인공 사이에 책임감이라는 불편한 감정을 공유하게 만들어, 새로운 종류의 동일시mirroring를 이끌어낼 수 있다는 점에서 효과적이다. (중략)

 

  비극적인 게임 엔딩이 보여주는 어색함은, 보통의 비상호작용적인 비극에서는 수용자가 그 고통에 대해 어떤 책임감도 느끼지 않기 때문에 그 내용을 받아들일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오셀로"에서 우리는 데스데모나가 살아남길 원하지만, 동시에 연극 감독이 정말 데스데모나를 살린다면 그에 대해서 분노를 느낄 것이다. 다르게 말하자면, 우리는 데스데모나에게서 유감스러운 감정을 느끼는 것은 좋게 받아들이지만, 그녀가 겪는 고통에 대해서는 아무 책임감을 느끼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점에서 기존의 비극적인 이야기들과 비극적인 게임 사이의 기초적인 차이가 드러난다. 바로 비극적인 이야기에서 수용자들은 실패와 고통에 대해 책임감을 느끼지 않지만, 게임에서는 그것을 느낀다는 것이다.

 

  허나 여전히 우리는 게임 속에서 일어나는 비극적인 사건들에 대해 완전한 책임감을 느끼지는 않는다. 그것이 현실이 아니기도 하고, 그 사건들이 항상 우리 통제 하에 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어찌되었든 선형적인 게임에서는, 고통스러운 사건을 구성하고 그걸 피할 수 없게 만드는 건 게임 디자이너이다. 〈레드 데드 리뎀션〉에서 게임의 비극적인 순간은 바로 플레이어가 게임의 조작으로부터 놓여나는be relieved of agency 때이다. (중략)

 

  히치콕의 영화 "사이코" 속의 유명한 샤워 씬 살인 이후에는, 주인공인 노먼 베이츠Norman Bates가 마리온Marion의 시신을 차 트렁크에 실어서 늪에 빠뜨리는 장면이 이어진다. 살인 그 자체는 충동적인 걸로 보이지만, 자신의 범죄를 은닉하려는 베이츠의 불안한 심리는 영화에서 명백히 드러난다. 그러나 영화를 보면서 어떻게 하면 완전범죄를 이룰 수 있을까 하는 관객의 공감과 고려는 사적인 영역으로 완전히 감춰진다. 우리는 자기 자신이 그런 끔찍한 생각을 즐겼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도 있다. 그에 비하면 게임은 그러한 부정이 불가능할 정도로 직접적이고 투명하다. 물론 게임 속의 사건들은 실제로 일어난 것이 아니며, 그 게임을 플레이하는 것이 곧 그 게임의 내용을 지지한다는 것도 아니고, 그것을 한 가지 가능성으로 열어놓은 것은 게임 디자이너들이다. 그러나 우리가 게임인 "오셀로"나 "안나 카레리나: 더 게임"을 플레이하게 된다면, 플레이어로서 어떻게 불행한 사건들을 일으킬지 생각해보아야 한다는 점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이것은 게임이 비극과 책임감에 대해 탐구할 수 있는, 지금까지 존재한 가장 강력한 예술 형식임을 말해주고 있다. 플레이어는 정말로 죄를 저지르고 은폐할 치밀한 계획을 고민해야 한다. 게임은 숨을 곳을 남겨놓지 않는다.


Juul, J. (2013). The art of failure: An essay on the pain of playing video games: MIT press. pp 110-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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