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소의 긴글통

별이슬 골짜기의 비극 〈스타듀 밸리(Stardew Valley)〉 본문

게임한다/게임하고 쓰기

별이슬 골짜기의 비극 〈스타듀 밸리(Stardew Valley)〉

생소 (Sngso) 2018. 9. 3. 19:56

별이슬 골짜기의 비극

  이 봉투를 받아주려무나. 아니, 아직 열어보지는 말고... 내 말을 들어보아라. 언젠가 현대인의 삶의 무게에 짓이겨지는 것만 같은 날이 올 게야... 자라나는 공허함에 네 밝은 영혼이 희미해지겠지. 얘야, 그런 날이 오면 이 선물을 열어볼 때가 된 거란다.”

  (I want you to have this sealed envelope. No, no, don’t open it yet... have patience. Now, listen close... There will come a day when you feel crushed by the burden of modern life... and your bright spirit will fade before a growing emptiness. When that happens, my boy, you’ll be ready for this gift.)



〈스타듀 밸리〉의 스크린샷

〈스타듀 밸리〉의 스크린샷


  2016년에 출시된 비디오 게임 스타듀 밸리(Stardew Valley)를 시작하면, 주인공은 침대에 누워 있는 할아버지에게 한 편지봉투를 받게 된다. 옆자리에 앉은 사원과 한 마디도 나누지 못하는, 완전히 단절된 공간에서 기계부품처럼 사무용 컴퓨터 앞에 멍하니 앉아있어야 하는 삶을 견디지 못한 주인공은 어느날 봉투를 뜯어보고 할아버지가 유산으로 남긴 농장이 있는 마을 스타듀 밸리를 찾아간다. 고전 게임을 연상케 하는 단순한 2D 그래픽으로 재현된 시골 산간을 배경으로 내달리는 버스를 보면서, 플레이어는 각박하고 지치는 일상에서 잠시 뛰쳐나와 게임 속 주인공처럼 귀농의 안식을 꿈꾸게 된다. 스타듀 밸리의 세계로 들어가는 일종의 제의와도 같은 이 오프닝을 마치면 마을의 이장인 루이스(Lewis)와 목수 로빈(Robin)의 안내를 받으며, 오랫동안 관리하지 않아서 수풀이 무성하고 엉망진창이 되어 있는 농장을 살피는 것으로 게임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게 된다.


   스타듀 밸리가 재현하는 농촌은 얼핏 보았을 때 정말 자유롭고, 평화롭고 친밀한 공간이다. 스타듀 밸리는 플레이어가 해야 하는 임무들을 제시하기는 하지만, 그것들은 롤플레잉 게임들에서 자주 쓰이는 퀘스트와 같은 것은 아니다. 이 임무들은 게임 속 장부, “저널(Journal)”에 한두 가지씩 쌓이는데, 구체적인 수행 방법을 가르쳐주지 않을 뿐만 아니라 그 보상들은 대개 보잘것없어서, 플레이어는 보통 이런 임무들을 작정하고 수행하려 하기보다는 게임 속 마을을 알아가기 위한 지침 정도로 생각하게 된다. 넓은 농장이 주어지지만, 플레이어가 농장을 돌보지 않고 호수에 나가 낚시를 하며 시간을 때우거나, 심지어는 아예 신경을 끄고 잠만 자거나 게으름을 피워도 게임은 아무런 제재를 하지 않는다. 플레이어 캐릭터의 뜀걸음은 빠르지도 않아서 마을 한 바퀴를 돌고 잠시 해변에 나갔다가 숲에라도 들르려 한다면 어느새 하루가 끝나버린다. 플레이어가 많은 행동들을 하고 싶어도 캐릭터의 에너지, 스태미나에는 제약이 있고, 밤늦게까지 깨어 있으면 큰 페널티를 받게 된다. 자정 넘어서까지 캐릭터가 깨어 있다면 다음날 사용할 수 있는 스태미나가 줄어들게 되고, 새벽 2시가 되면 플레이어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캐릭터는 그 자리에 쓰러져 버린다. 마치 게임이 일부러, 플레이어가 바쁘고 싶어도 바쁘지 못하게 만들어놓은 것만 같다. 플레이어가 빠른 시간 내에 게임의 콘텐츠들을 전부 소모해버리지 못하게 하는 효과도 있겠지만, 개발자가 플레이어로 하여금 도시 생활에 지쳐서 낙향한 주인공의 역할에서 벗어나지 않게끔 신경 쓴 것이라고도 볼 수 있겠다.


   이렇게 도시와 시골, 소외된 노동의 공간과 친밀하고 본래적인 공간이라는 이분법은 이 게임의 서사에서도 드러난다. 스타듀 밸리에는 주인공 캐릭터가 일했었던 기업 조자(Joja)’의 슈퍼마켓 지점이 들어와 있다. 창백한 푸른색 외벽과 말을 걸어도 별 반응이 없는 직원들의 모습에서 이 게임이 현대인, 도시민의 노동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가 단적으로 드러난다. 또한 스타듀 밸리 마을 언덕에는 버려진 건물이 하나 있는데, 플레이어는 이 건물에 들어와 살고 있는 요정들이 제시하는 임무를 수행하는 것으로 농사에 도움이 되는 물건들을 얻으면서, 이 낡은 건물을 멋진 마을회관으로 가꾸어나갈 수 있다. 하지만 이 건물을 조자 마트의 창고로 만들어버릴 수도 있는데, 여러 가지 임무들을 그저 돈으로 구매하는 걸로 해결할 수 있게 되지만 대신 마을회관을 만들 수 있는 기회는 없어지게 된다. 주인공이 귀농을 결심하기 전에 느꼈을 미묘한 내적 갈등은 이 마을에서 이렇게 감각적으로, 가시적으로 나타나게 된다.


   이렇게 보면 얼핏 스타듀 밸리는 지치고 고된 삶의 도피처, 평화로운 쉼터를 플레이어에게 제공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막상 게임을 진행할수록 플레이어는 스타듀 밸리가 마냥 한가한 게임은 아니라는 것을 느끼게 된다. 그저 마음에 드는 걸 심으면 될 줄 알았던 농작물들은 납품 단가와 성장 속도가 제각기 달라서 어떤 농작물을 심어야 가장 큰 수익을 낼 수 있는지 따로 정해져 있다. 또 농작물들을 효율적으로 기르기 위해서는 각종 농기구들을 업그레이드해야 하는데, 업그레이드에 쓰이는 광석들은 괴물들이 나타나는 광산을 오르내리며 채굴해야 한다. 게다가 플레이어는 마을 사람들과 친해지기 위해서 온갖 선물들을 주어야 하는데, 마을 사람들은 제각기 좋아하는 물건이 달라서 이를 구별해가며 선물을 주어야 한다. 심지어 어떤 선물을 좋아하는지는 직접 줘서 반응을 확인하기 전까지는 알 수 없다. 결국 게임이 마련한 여러 콘텐츠들을 플레이해보기 위해서는 게임 속에서 더 많은 돈을 벌어야 하고, 제한된 하루 시간을 활용해서 벌어들이는 돈을 극대화하기 위해서는 캐릭터의 동선을 시간 단위로 잘게 나누어가며 효율적인 플레이를 해야 한다. 앞에서 이야기했듯이 캐릭터의 스태미나도, 게임 속 하루 일과도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하루하루의 일과를 아침에 일어나기 전에 미리 머릿속에 그려놓고 움직여야 최대한 효율적으로 시간을 사용할 수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마음의 안식을 찾아 시골 마을에 깃든 주인공은 플레이 과정에서 그 누구보다 마을의 자연을 자발적으로, 더 효율적으로 수취하게 되는 셈이다.


   최대한 효율적으로 게임을 플레이하려면 게임이 제공하는 정보만으로는 부족하다. 그래서 나 또한 도대체 마을 사람들하고 빨리 친해지려면 뭘 줘야 하는 거야?”하고 인터넷을 뒤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오래 찾아볼 것도 없이 게이머들이 만든 스타듀 밸리 위키[각주:1]라는 사이트가 나타났다. 스타듀 밸리에 대한 거의 모든 정보가 올라와 있다고 보아도 과언이 아니었다. 게임 속에 등장하는 여러 아이템들의 기본적인 정보부터 시작해서, 어떻게 하면 가장 효율적인 농장을 만들 수 있는지까지 그야말로 없는 것이 없었다. 마을 주민들이 좋아하는 선물 리스트를 살피던 나는 문득 게임을 이렇게 플레이해도 되는 건가?’라는 의문이 들었다. 물론 꼼꼼히 여러 정보들을 살펴보면 게임 속에서 강한 괴물들에게 함부로 덤비다 쓰러지거나, 별로 투자할 가치가 없는 작물을 알맞지 않은 시기에 심거나, 주민들이 싫어하는 물건을 선물하는 바람에 기껏 애써서 쌓은 친밀도를 잃어버리는 일은 없을 것이다. 요컨대 게임을 플레이하면서 덜 실패할 수 있을 것이고, 게임을 좀 더 효율적으로 플레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사이트에는, 내가 게임을 하면서 스스로 알아나가야 할 것들까지 모두 다 적혀있는 것만 같았다. 그래서 나는 이내 그 인터넷 사이트를 닫아버리고야 말았다.

 



  잠시 다른 이야기를 해 보자. 많은 게이머들이 비디오 게임을 플레이하며 스트레스를 받는다. “아니, 스트레스를 풀려고 게임을 하는 거 아니야? 왜 게임을 하면서 열받는다고 하지?”라는 의문이 들 수도 있다. 그러나 게임을 많이 즐겨온 게이머라면 절로 고개가 끄덕여질 것이다. 많은 게임들이 게이머들의 성질을 긁는다. 분명 내가 먼저 총을 쐈는데 오히려 내가 먼저 쓰러질 때, 아까는 멀쩡히 돌았던 코너에서 이번엔 차가 뒤집어질 때, 친구는 3분만에 푼 퍼즐을 나는 한 시간 내내 끙끙대고 있을 때 게이머들은 열받는다고 말한다. 그렇기에 오늘도 게이머들은 소리를 지르고, 키보드를 부서질 듯이 치며 패드를 집어던진다. 게임은 자주 실패의 연속이다. 게임을 즐기지 않는 많은 사람들에게도 게임 오버(Game Over)”라는 표현은 이제 익숙할 정도이다.


   이렇게 플레이어는 실패를 겪으며 당혹스러워하고, 화를 내기도 하고 간혹 게임을 포기하기도 한다. 그러나 실패는 엄연히 게임을 구성하는 규칙의 일부이다. 공기놀이를 해 본 사람이라면, 처음 힘겹게 공기알를 한 알씩 던져놓고 바닥을 더듬기를 반복하다가 어느 순간 공기알을 잡아내었을 때의 희열을 알고 있을 것이다. 전자음이 두드러지는 배경음악에 맞추어 빠르게 장애물을 피해야 하는 게임 슈퍼 헥사곤(Super Hexagon)을 처음 플레이했을 때 나는 전자 공기놀이를 마주한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동체시력이 느린 나는 처음 플레이할 때는 10초도 넘기기 힘들었지만, 눈을 크게 뜨고 고생한 끝에 1분을 버텨서 다음 스테이지로 넘어갈 때 느꼈던 성취감은 아직도 기억에 남아있다.


〈슈퍼 헥사곤〉의 스크린샷


  슈퍼 헥사곤은 플레이어의 반사신경을 많이 요구하지만, 게임마다 플레이어에게 요구하는 것들은 다르다. 어떤 게임들을 능숙히 플레이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 사실들을 암기해야 하기도 한다. 가령 닌텐도의 게임 포켓몬스터시리즈에서 포켓몬들과 기술들이 가지고 있는 속성들은 굉장히 다양하고, 다른 사람과의 대전에서 이기기 위해서는 그 속성의 약점을 공략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지만, 정작 게임 속에서는 이 기술이 상대 포켓몬의 약점인지 아닌지 알려주지 않기 때문에 플레이어가 그 여부를 외우고 있어야 한다(이 시리즈는 근래에 들어서야 약점 정보를 플레이어에게 알려주기 시작했다). 한편 어떤 게임들은 아예 게임 속에 관련된 정보를 백과사전 형식으로 탑재하기도 한다. 문명 5 (Civilization V)토탈 워: 쇼군 2 (Total War: Shogun 2와 같은 게임들은 백과사전이 내장되어 있어서 플레이 도중에 열어보고 복잡한 규칙이나 정보를 확인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게임과 직접 관련이 없는 사실들까지 읽을거리로 실어두었다. 게임을 잘 하는 게이머가 되기 위해서는 게임이 제공하는 이러한 정보들을 잘 습득해야 한다. 또한 그 게임이 어떤 방법으로 플레이어를 가르치는지, 어떤 방식을 통해 플레이어에게 필요한 정보를 제공하는지도 체득하고 있어야 한다. 때로는 이런 방법들을 여러 게임들이 공유하면서 공통의 문법을 가지는 장르가 만들어지기도 한다. 콜 오브 듀티 (Call of Duty)와 같은 1인칭 슈팅 게임에 익숙한 사람은 배틀필드 4 (Battlefield 4)와 같은 게임을 처음 해보더라도 금방 적응할 것이다. 두 게임은 다른 여러 게임들과 비교했을 때 조작체계나 화면 인터페이스가 서로 유사한 점이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무리 여러 번 해봐도 어려운 게임이 있기 마련이다. 그럴 때 게이머는 내일 또 해보고, 다르게 접근해보고, 친구에게 물어보기도 하고, 더 나아가서는 인터넷을 뒤져보거나 다른 사람의 플레이 동영상을 보기도 한다. 게임 외부에서 해답을 찾게 되는 것이다. 과거에는 플레이에 도움이 되는 정보들을 모은 공략이 실린 잡지들이 팔리기도 했고, 게임을 구매하면 두꺼운 매뉴얼이 동봉되기도 했다. 이런 매체들이 여전히 남아 있기는 하지만, 오늘날 보편적인 것은 역시 인터넷을 통해 유통되는 정보들이다. 2.0 이후 등장한, 참여자가 텍스트에 기여하는 백과사전인 위키는 오늘날 전 세계의 게이머들이 자신의 플레이 노하우를 공유하는 가장 보편적인 플랫폼 중 하나로 자리매김했다. 앞서 언급한 스타듀밸리 위키도 이러한 위키 사이트들 중 하나다. 또한 영상을 제작하고 유통하는 방식이 인터넷을 통해 보편화되고 간편해지면서 영상 매체가 게임 공략의 가장 주효한 매체가 되었다. 이제 게이머들은 자신의 플레이 경험을 극대화하기 위해 가능한 모든 수단들을 총동원하는 총력 플레이를 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제 외울 필요도 없이 게임이 직접 알려준다.
〈포켓몬스터 레드〉와 〈포켓몬스터 썬〉.


   이렇게 변화한 게임 공략들은 게임 플레이 방식 자체를 변화시키기도 했다. 게이머들은 이제 게임의 숨겨진 요소를 모두 찾아내기 위해 머리를 쥐어뜯지 않아도 된다. 게임에서 실패하지 않을 수 있는 최적의 플레이 방법이 인터넷에 공유되기도 하고, 다양하게 분기하는 서사를 가진 게임들은 그 이야기들이 전부 문자나 영상의 형식으로 인터넷에 올라오기도 한다. 게임 플레이의 양상이 이렇게 달라지자 게이머들 사이에서는 각자의 플레이 방식에 대한 가치평가와 논쟁이 끊이지 않게 되었다. 이상한 일이 아닌가? 이제 게이머는 더 많은 정보를 활용하며 플레이할 수 있게 되었고, 게임을 더 잘 플레이할 수 있게 된 것이 아닌가? 이것이 왜 논쟁의 대상이 되는 걸까? 하지만 문제는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어떤 플레이가 게임을 더 플레이하는 것인지 설명할 필요가 남아있기 때문이다. 내가 스타듀 밸리를 플레이하면서 느낀 것처럼 말이다. 의외로 나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이 문제를 고민하고 있었다. 인터넷 게임 웹진 ‘Rock, Paper, Shotgun’에 기고된 언제 위키를 찾아봐도 되는 걸까(When Is It Acceptable To Look Up A Wiki?)”[각주:2]라는 글 또한 이 문제를 “Alt-tabbing(게임 도중에 외부 자료를 살펴보기 위해 화면을 바꾸는 것)”이라는 표현까지 써가며 살펴보고 있는데, 이 글에 수많은 댓글들이 달려 있는 걸로 보아 많은 이들에게 이 문제가 논쟁의 대상이었던 것으로 보인다(그리고 정말 우연찮게도 이 글 또한 스타듀 밸리를 예시로 쓰고 있었다). 도대체 실패가 플레이어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일까?


   앞서 플레이어는 실패를 겪지 않기 위해 여러 방편으로 노력한다고 했지만, 한편으로 실패는 플레이어에게 게임을 각별하게 만들어주기도 한다. 게임 속에서 실패를 거듭해가며 성장한 플레이어는 자신이 걸어온 길을 돌이켜보며 뿌듯함에 사로잡히곤 한다. 앞서 내가 이야기한 공기놀이나, 슈퍼 헥사곤같은 게임의 예시가 바로 그렇다. 누군가는 3분 만에 끝내버린 게임이라고 할지라도 자기 자신이 온갖 고난을 겪으며 끝내 게임이 요구하는 성취를 이루어냈다면, 그것은 그 자체로 소중한 경험이 된다. 예스퍼 율 (Jesper Juul)은 그의 에세이 「실패의 예술(The Art of Failure)에서, 게임을 끝까지 플레이한 사람들 중에서 최소한 한 번은 실패를 겪은 플레이어들이 게임을 더 좋게 평가했다고 말한다.[각주:3] 플레이어에 따라 게임은 수천 가지 모습으로 변하고, 실패 또한 그 모습을 구성하는 매우 소중한 경험이 된다. 이것은 게임의 플레이가 결과로 환원될 수 없는, 플레이 자체에 따라 그 내용이 달라지는 양방향적 매체이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이다.


   스타듀 밸리에서 가장 좋은 효율을 보이는 선물은 바로 생선회(Sashimi)’. 한 번 조리법을 익혀두면, 마을의 거의 모든 주민들이 생선회를 그럭저럭 좋아하기 때문에 선물 걱정은 일단 하지 않아도 좋다. 그러나 파란 머리를 가진 에밀리(Emily)라는 캐릭터는 생선회를 싫어한다. 나는 그녀가 생선회를 싫어한다는 것을 그녀의 자매인 헤일리(Haley)와 대화하면서 알게 되었다. 그녀는 가끔 언니를 골탕 먹이려면 생선을 선물해주면 된다. 언니는 생선을 못 먹거든이라고 플레이어에게 귀띔해주기 때문이다. 현실에 비추어 보았을 때에도 사람은 보통 다른 사람과, 또 그 주변 사람들과 함께하면서 그 사람을 알아가게 되지, 먼저 그 사람에 대해 다른 텍스트로 공부하거나 하지는 않는다. 이렇게 세심하게 만들어진 게임은 게이머의 몰입을 유도하기 위해 여러 장치들을 사용한다. 헤일리의 저 말도 그런 개발자의 의도를 가진 장치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만일 내가 에밀리는 생선을 싫어한다는 사실을 스타듀 밸리 위키를 통해서 먼저 알았더라면 헤일리의 저 말은 그저 귀찮은 대사에 불과했을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는 옳고 그름을 떠나서 이미 게이머가 스타듀 밸리를 제작자가 의도한 바와는 완전히 다르게 플레이하고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플레이어의 이런 극단적인 실패 회피는 플레이 경험을 마치 단조로운 노동처럼 만들고, 주체적인 수용 행위로서의 플레이를 해칠 것이다. 앞서 언급한 게임 웹진의 기사 또한 그런 입장에 서 있다. 그러나 일견 자유로워 보이는 모든 것들이 그렇듯이, 그 책임이 온전히 플레이어에게 돌아가야만 하는 것인지는 조심스럽게 물을 필요가 있다. 물론 게임 플레이 방식의 최종적인 선택권이 플레이어에게 있다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이런 플레이의 변화는 성급하게 가치를 평가하거나 책임을 묻기 이전에 관찰과 해석이 필요한 것이 아닐까. 게임과 그 플레이는 현실과 괴리된 진공 속에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실패를 극복하기 위한 게이머들의 선택은 시간이 지나면서 변화했고, 게이머를 둘러싼 현실 또한 변화했으며, 게임이라는 문화상품이 소비자에게 도달하는 방법들 또한 변해왔다. 그렇다면 이런 변화의 자취를 세심하게 살필 때, 오늘날 게임과 사회가 주고받는 영향을 좀 더 자세히 알 수 있게 될 것이다.


   오늘날 정해진 가격을 지불하고 게임 패키지, 혹은 다운로드 서비스를 구매하는 게이머들은 자신이 지불한 가격이 그만한 가치가 있었는가를 확인하고 싶어한다. 그들은 때때로 그렇게 비싼 돈을 지불한 게임의 모든 것들을 파헤치지 않으면 실패한 소비를 한 것이 아닌가하는 강박을 느끼기도 한다. 어떤 게임들은 도전과제 100% 달성이 어렵다는 이유로 게이머들의 기피 대상이 되기도 한다. 이럴 때 게임은 즐거운 놀이가 아니라 노골적으로 노동의 연장인 여가가 된다. 어느 에세이 작가는 오늘날 사회가 소위 가성비에 대한 강박으로 질식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하는 물음을 던진다.[각주:4] 그렇다면 게임 플레이에 있어서도 그런 우리 사회의 단면이 드러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예스퍼 율은 그의 에세이 제목에서 게임을 실패의 예술(The Art of Failure)”이라고 말하지만, 오늘날 우리 사회를 살아가는 게이머들에게는 실패할 여유조차 없는 것은 아닐까. 모바일 게임이 더 이상 피곤하게 배움의 과정, 숙련도를 쌓는 실패의 과정을 필요로 하지 않게 변하고 있다면 오늘날 PC · 콘솔 게임들은 다른 방식으로, 수용의 측면에서 이런 변화를 겪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이렇게 오늘도 스타듀 밸리의 주민들은, 이상하게 내가 좋아하는 것들만 콕콕 골라서 선물해주는 희한한 농사꾼들을 만나고 있다.



(과거에 썼던 글을 옮긴 것입니다)




이미지

Steam (Stardew Valley)

Steam (Super Hexagon)

Serebii.net (Pokemon Yellow - Virtual Console Changes)

Business Insider (Pokemon Sun and Moon tells you move type effectiveness)

각주


  1. https://stardewvalleywiki.com/Stardew_Valley_Wiki [본문으로]
  2. Cox, Matt. When Is It Acceptable To Look Up A Wiki?. Rock, Paper, Shotgun, 2016.9.8.https://www.rockpapershotgun.com/2016/09/08/when-is-it-acceptable-to-look-up-a-wiki/ [본문으로]
  3. Juul, Jesper. The Art of Failure: An Essay on the Pain of Playing Video Games. The MIT Press, 2013, p.35. [본문으로]
  4. 유정아, 「소비에 실패할 여유」, 『시시한 사람이면 어때서』, 북폴리오, 2018, 186쪽. [본문으로]
Comments